[조용한 학살을 멈추자]
20대 여성 7명의 이야기
“지지 않고 잘 살고 싶어요”
20대 여성 7명의 이야기
“지지 않고 잘 살고 싶어요”
한국 20대는 남녀 모두 힘들다. 취업 첫발이 쉽지 않다. 수년간 이어진 고용시장 침체에 올해는 코로나19라는 재난이 겹쳤다. 이런 상황은 20대 여성에게 더 가혹한 결과로 이어졌다. 통계청 월별 고용동향을 보면, 코로나 1차 확산 여파가 컸던 올해 3~4월 20대 여성 취업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4만1천명 줄었다. 20대 남성 취업자 감소폭(9만3천명)의 2.6배에 달했다. 20대 여성 자살률은 급증하고 있다. 10만명당 20대 남성 자살률(통계청)은 21명(2017년)→21.5명(2018년)→21.6명(2019년)으로 큰 변화가 없지만, 20대 여성 자살률은 11.5명→13.2명→16.6명으로 44% 가파르게 증가했다. 2020년 상반기 20대 여성 자살사망자(보건복지부)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3% 늘었다. 추세가 꺾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정 연령대에서만 극단적 선택 비율이 급증하는 것은 위기경보이자 구조신호다. 숫자들은 위기에 내몰리는 20대 여성을 가리켰지만 사회는 주목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20대 여성들은 사회에서 설 자리를 조용히 잃어갔다.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20대 여성의 위기를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자문위원은 ‘조용한 학살’이라고 했다. 지난 달 <한겨레> 젠더 미디어 <슬랩>이 ‘조용한 학살이 다시 시작됐다’고 알리자 20대 여성 수천명이 좌절과 분노, 희망과 위안의 댓글로 공감했다. 그제서야 정부는 20대 여성의 극단적 선택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한겨레>는 20대 여성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전하려 한다. 그 목소리에 답이 있기 때문이다. 조용한 학살은 이제 멈춰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작년까지만 해도 하루에 한 번씩 생각했다.”(95년생 ㅎ씨)
“우연한 계기로 고통 없이 갈 수 있다면 당장 선택할 거다.”(95년생 ㄱ씨)
“우연한 계기로 고통 없이 갈 수 있다면 당장 선택할 거다.”(95년생 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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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이 열심히 살아남아요”… 댓글을 들려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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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들은 지금 ‘셀프 헬프’ 중”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72430.html
(1년 계약직, 1인 가구, 월 소득 110만원, 소속감 집단: 딱히 없음) 취업을 준비 중인 95년생 ㅈ씨는 몇 달 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우울, 불안, 강박, 무기력 모두 높은 수치란 진단을 받았다. 매일 밤 처방받은 약을 먹고 잠자리에 든다. 2주에 한 번씩 병원에 가고 있다. “병원에서 제 불안 점수가 거의 만점이라고 해요. 약을 먹어도 불안해서 약이 도움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ㅈ씨는 미래에 대한 막연함, 불안함이 학교에 소속돼 있을 때보다 취업준비생으로 사는 지금 더 심하다고 했다. “원래 회사에서 여성을 뽑는 비율이 적다고 들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채용시장이 얼어붙어서 전체 채용 인원 자체가 줄면 거기서 여성의 파이는 얼마일까요. 이젠 내 자리가 없을 것 같아요.” 지난해 취업 공고를 훑어볼 때 비하면, 올해는 코로나 때문인지 공고 자체가 확 줄었다고 했다. “여자들이 힘들다고 해요.” ㅈ씨는 주변 친구들도 많이 우울해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서류에서 계속 떨어지고,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 땐 친구들한테 말하기도 조심스러워요. 친구들 다 취업 준비하는 20대 여성인데, 이 애들도 이미 자기 몫으로 충분히 우울한 사람들이거든요.” 현재 ㅈ씨는 서울에 혼자 살며 월 110만원 안팎의 사무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5평 원룸에 사는데 매달 생활비로 70~80만원 정도가 든다. 늘 절약하고 돈을 모아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다. “(경제 문제에서) 난 그냥 이미 글렀다는 생각이 들어요.” ㅈ씨는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고, 취업 준비도 열심히 하지만 요즘은 ‘별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특별한 계기 없이도 무기력한 느낌이다. 부동산 뉴스를 볼 때, 채용 비리 뉴스들을 볼 때 특히 더 그렇다.
“취업하려고 하는 쪽은 코로나 시국과 관계없이 그냥 사람을 적게 뽑아요. 얼마 전 공고 보니 딱 1년 계약직이더라고요. 들어가는 게 나은 것인지 아닌지 진짜 모르겠어요. 한번은 제가 원하는 직무에 6개월 인턴 자리가 뜨길래 되게 고민하다 결국 원서를 넣긴 넣었어요. 하다 보면 6개월 뒤에 다른 뭐가 있을까…, 되게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오는 거 있죠.”
(단기 아르바이트, 1인 가구, 월 소득 불규칙, 소속감 집단: 친구) “올해까지만 살아있자.” 91년생 ㅇ씨는 1년 뒤, 3년 뒤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자꾸 틀어지는 계획을 세우는 게 의미가 없어서다. 자신한테 실망하는 이유만 될 뿐이다. “그냥 이번 달까지만 살아있자, 올해까지만 살아있자, 그런 식으로 생각해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ㅇ씨는 ‘앞으로 뭘 하고 싶다’, ‘1~3년 사이에 이런 걸 해야겠다’ 같은 것을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ㅇ씨는 3년 전 세상을 등지려 했다. 계획을 행동에 옮기려 했다. 다행히 친구의 신고로 구출되면서 ㅇ씨의 계획은 중단될 수 있었다. 이후 ㅇ씨는 한동안 덤덤하게 지냈다. 하지만 요즘 다시금 크게 힘들 때, 또 그 생각이 찾아온다. 그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20대 초반 집을 나왔다. 부모님이 자신의 명의로 빚을 지는 바람에 늘 ㅇ씨를 따라다니는 부채를 갚느라 20대 내내 고생을 했다. 지난해 겨우 빚을 청산했지만 늘 생활비에 쫓긴다. 단기 알바를 구할 뿐 꾸준한 소득을 예상할 수 없는 처지다. “한 1년이라도 안정적인 생활비가 있으면 취업 공부를 할 수 있을 텐데….” 최근 꽤 괜찮은 두 달짜리 알바를 구했다. 소득이 200만원 생기는 기회라 놓칠 수 없었다. 하지만 더 나은 일자리를 찾으려면 꼭 해야 하는 공부를 미뤄야 한다.
“이게 엄청 큰 딜레마에요. 생활비를 벌어야 해서 (더 나은 일자리를 위한) 공부를 미루게 되고, 일을 하다보면 공부를 놓게 되고, 그럼 안정적 일자리를 위한 공부는 못하게 되고…, 그럼 또 아무 일이나 하게 되고, 그럼 몸이 상하고, 그럼 병원에 가고, 병원에 가려면 일을 해서 생활비(병원비)를 벌어야 하고…, 이런 식으로 계속 반복이 되고 있어요. 일상에서 힘든 건 거의 항상 돈 때문이죠. 돈만 있었으면…, 이런 생각 하죠.”
(프리랜서, 월 소득 200만원, 소속감 집단: 가족) 95년생 ㄱ씨는 답변지에 “맨날 합니다”라고 적었다. 그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서 병원에 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ㄱ씨는 ‘그냥 죽어야겠다’가 말버릇이라고 했다. 당장 극단적 선택을 할 계획을 세운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는 “그냥 우연히 죽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한번은 병원의 도움을 받기로 마음먹고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한 적이 있다. 약을 처방받았는데 잘 안 맞는 것 같아서 복용을 그만뒀다. ㄱ씨는 요즘 다른 병원에라도 다시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무엇이 그리도 ㄱ씨를 힘들게 하는 것일까. 내년 2월 대학 졸업을 앞둔 ㄱ씨는 현재 방송업계에서 프리랜서로 일한다. 한 달 200만원을 손에 쥐지만 일주일에 몇 시간 일하는지조차 가늠되지 않는다. “그냥 눈 뜨고 있을 때는 거의 일합니다. 퇴근 후에도 언제든 연락 오면 최대한 빨리 일을 해야 합니다.” 일자리가 있고 소득이 있다고 해서 또래보다 형편이 나은 것은 아니다. ㄱ씨는 일자리에 대한 만족도가 무척 낮다고 했다.
“현재 하는 일에 대한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1점입니다. 업계가 열정페이가 심해요. 기본급이 좀 올랐으면 좋겠습니다. 일한 것에 비해 보상이 적고 페이는 너무 짠 편이에요. 딱히 삶이 희망적이지 않아요. (미래가) 잘 안 그려져서 그냥 좀 일찍 삶을 마치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해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데엔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다고 생각해요. 같은 20대 여성 중에서도 경제적으로 어려울수록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거나 시도할 확률이 높은 것 같아요. 이런 뉴스를 볼 때 괜찮은 일자리, 그러니까 경제적 기회를 이들에게 줬으면 달랐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해요. 지금은 몇 안 되는 불안정한 일자리를 놓고 같은 20대 여성들끼리 경쟁하고 있거든요.”(97년생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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