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넜다” 10월 22일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총장이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발언한 후 청와대가 과연 윤 총장의 임기(내년 7월까지)를 보장할 것이냐에 관심이 쏠렸다. 윤 총장 체제를 그대로 끌고 가기에는 임계점을 넘은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돌았다. 결국 한 달 동안의 신경전 끝에 청와대와 여권 그리고 윤 총장은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넜다. 직무배제 결정으로 윤석열 체제가 유지될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직무배제 결정 이후의 상황을 주목하고 있다. 윤 총장과 추 장관의 동반 사퇴설이 나오기도 하고, 윤 총장이 물러난 후 추 장관이 순차적으로 물러날 것이라는 설도 나돈다. 윤 총장이 물러난 이후에도 추 장관이 여전히 건재할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징계심의위가 열리고 추 장관이 윤 총장에 대한 해임건의를 할 경우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 ‘대통령의 시간’이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동반 사퇴설은 주로 야권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야당의 한 관계자인 A씨는 “윤 총장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마당에 직무배제라는 강경한 수순까지 밟는 것을 보니, 결국 두 인사의 동반 사퇴로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야권에서는 현 정부가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을 검찰개혁이라는 이슈만으로 돌파하기 위해 동반 퇴진이라는 카드를 꺼낸 것으로 보고 있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전 자유한국당 대표)이 11월 26일 페이스북을 통해 삼국지의 반간계(反間計)라고 비유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홍 의원은 “문재인 정권 탄생의 제1·2 공신끼리 사투를 벌이는 장면을 연출해 모든 국민의 관심을 추·윤의 갈등으로 돌려버리고, 그걸 이용해 폭정과 실정을 덮고 야당도 그 속에 함몰시켜 버린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정작 민주당 내부에서는 추 장관과 윤 총장의 동반 사퇴설을 낮게 보고 있다. 오히려 순차적인 사퇴에 방점을 두는 분위기다. 수도권 지역의 B의원(민주당)은 “직무배제 명령을 보면 윤 총장이 먼저 사퇴한 후 추 장관이 마무리를 짓는다는 결론이 난 것 같다”고 말했다. B의원은 “이 정도 상황이면 윤 총장도 그렇게 버티고 있으면 안 된다”면서 “지금 법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말했다.
직무배제 결정 이후 민주당 내부의 분위기는 한쪽 방향으로 가고 있다. 추 장관의 결정에 동의하는 입장이다. 이낙연 대표는 직무배제 명령이 내려진 11월 24일 페이스북에 “윤 총장은 공직자답게 거취를 결정하기를 권고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 대표는 다음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윤 총장에 대한 국정조사를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의 이 같은 강경한 입장이 당·정·청 사이 사전에 공유한 가운데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조응천 의원 등 몇몇 의원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생각은 윤 총장의 사퇴를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추 장관이 윤 총장에 대한 징계청구 혐의 요지 중 두 번째 부분에 주목했다. 주요사건 재판부 판사들에 대한 불법사찰 책임에 대한 것이다. 지난 2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울산사건 등 주요사건 재판부 판사와 관련해 세평, 개인 취미, 물의 야기 법관 해당 여부 등이 기재된 보고서를 작성·보고했다는 것이다. 윤 총장은 이를 반부패강력부에 전달하도록 지시함으로써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다른 혐의와는 달리 이 혐의는 이번 징계청구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인 C씨는 “아무리 관행이라 하더라도 판사들에 대한 불법사찰 의혹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B의원 역시 “판사들에 대한 검찰의 정보수집은 부적절했다”고 말했다.
■추미애·윤석열 동반 사퇴설도
하지만 여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삐져나오고 있다. 청와대가 검찰총장을 중도에 하차시키는, 나쁜 선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다른 관계자인 D씨는 “직무배제 명령은 또 하나의 선례가 될 수 있다”면서 “민주당이 정치를 잘해나가야지, 정권을 잃는 순간 이런 나쁜 선례들이 독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결국 여론이 추 장관의 장관직 계속 수행 여부를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윤 총장만 사퇴시키면 여권으로서는 부담이 커질 것”이라면서 “이미 직무배제를 명령하기 전에 여러 시나리오를 검토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엄 소장은 “여론으로 보면 직무배제를 철회할 정도로 여권에 불리한 것은 아니지만 추 장관의 개인적인 성향에 대해서는 여론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일각에서는 윤 총장이 물러난 후에도, 추 장관이 검찰개혁을 소명으로 내세워 장관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민주당의 한 인사인 E씨는 “추 장관 주변에서는 추 장관을 보궐선거 후보급이 아니라 대선주자급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보궐선거를 앞두고 후보로 나서기 위해 장관직을 그만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E씨는 “추 장관의 고집스러운 스타일로 봤을 때 청와대에서 진퇴를 쉽게 결정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여권에서는 추 장관의 결정을 옹호하는 친문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장성철 소장은 “지금은 추 장관과 윤 총장, 두 사람이 사퇴하는 것이 합리적인 결정이 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청와대가 그런 선택을 할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말했다. 윤 총장이 사퇴한 이후 여권에서 추 장관을 사퇴시킬 이유를 찾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또 다른 관심사는 윤 총장의 선택이다. 장 소장은 “윤 총장이 검찰총장이라는 갑옷을 벗고 자연인이 된 후에도 여러가지 관련 의혹에 대한 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결국 윤 총장은 정치인이라는 갑옷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정치 외에 딴 길이 없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엄경영 소장은 “윤 총장은 사실상 정치의 수순으로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면서 “원래 임기가 7월 말까지인데 이번 직무배제 명령으로 정치 행보가 더 빨라진 셈”이라고 말했다.
내년 4년 보궐선거 전후, 야권의 대권주자들 사이에는 큰 지각 변동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엄 소장은 “보궐선거 결과에 따라 좌우되겠지만, 윤 총장을 비롯해 국민의힘 외곽에 있는 정치인들이 야권의 중심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장 소장은 “윤 총장에 대한 직무배제 명령으로 2022년 대선 정국을 앞두고 윤석열 변수가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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